썬 마이크로시스템즈

"The Network is the Computer."

— 인터넷과 클라우드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네트워크의 무궁무진한 힘을 통찰했던 썬의 유구한 슬로건.

자바라는 불멸의 명작을 빚어냈으나 비즈니스 모델 설계에 참담히 실패하여, 결국 돈독 오른 오라클의 마수 아래 지적재산권 공장으로 합병당한 불운의 천재. 썬이 살아있었다면 안드로이드 자바 특허 소송도 없었을 것이고 오라클의 무자비한 라이선스 압박도 없었을 텐데(...)

1. 개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현대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흔적을 남긴 공학적 거인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1982년에 설립했으며, 회사 이름의 'SUN' 역시 스탠퍼드 대학 네트워크(Stanford University Network)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강력한 하드웨어 워크스테이션(SPARC)과 전용 유닉스 운영체제인 솔라리스(Solaris)를 결합하여 기업 시장을 지배했다. 특히 1995년 제임스 고슬링에 의해 개발된 객체지향 언어 Java를 전 세계에 무상으로 배포함으로써 소프트웨어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오픈소스에 대한 과도한 이상주의적 태도와 닷컴버블의 직격탄을 맞고 경영난에 빠진 끝에, 2010년 데이터베이스 공룡인 오라클에 인수합병되며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2. 컴퓨터 역사를 통째로 바꾼 썬의 유산들

2.1. Write Once, Run Anywhere: Java

컴퓨터 하드웨어 아키텍처나 운영체제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똑같이 구동되는 가상 머신 기반 언어인 Java는 썬의 최대 업적이다. 당시 언어적 복잡성으로 지탄받던 C++의 포인터 등 해로운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가비지 컬렉터(Garbage Collector)를 도입하여 메모리 관리의 안전성을 선사했다. 이는 현대 엔터프라이즈 서버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생태계를 움직이는 마스터 스펙이 되었다.

2.2. 분산 시스템의 표준화: NFS (Network File System)

서로 다른 서버 간에 네트워크를 통해 드라이브와 파일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든 NFS 역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전 세계에 소스코드와 명세를 무상 공개한 기술이다. 이 덕분에 전 세계 서버들은 로컬 드라이브의 속도 장벽을 깨고 대규모 스토리지 자원을 논리적으로 공유하는 눈부신 혁신을 이루었다.1

2.3. 닷컴 버블과 쓸쓸한 침몰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썬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닷컴 스타트업들이 무조건 썬의 고가형 솔라리스 워크스테이션과 서버 하드웨어를 구매해 서버실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블이 터지자 스타트업들은 헐값에 파산했고, 썬의 고가 워크스테이션 라인업은 인텔의 x86 칩과 오픈소스 리눅스의 대항마 앞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뒤늦게 오픈소스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오픈JDK(OpenJDK)를 배포하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이미 바닥난 재정 상태를 메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관련 드립 및 밈

3.1. 제임스 고슬링의 오라클 런 (Oracle Run)

자바의 아버지 제임스 고슬링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합병 후 당연하게도 오라클의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특허 소송과 라이선스 획득에만 혈안이 된 오라클의 고압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사정없이 빡친 고슬링은 합병 단 몇 개월 만에 '오라클에 있는 것은 숨 막히는 지옥 같았다'라며 미련 없이 퇴사했다. 이후 구글 등을 거치며 자유로운 오픈소스 활동을 벌이고 있어, 자바 개발자들에게는 진정한 자유 영혼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3.2. The Network is the Computer

썬의 대표 슬로건인데, 오늘날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아마존 서비스(AWS) 생태계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미래 통찰력을 가졌는지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막상 이 구호를 먼저 부르짖던 썬 본사는 정작 클라우드 인프라가 대세가 되기 직전에 경영 악화로 폭사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척자의 쓸쓸한 결말을 상징하는 웃픈 밈으로 쓰인다.

4. 여담

  • 오라클 로고의 덧씌우기 복수: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옛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캠퍼스는 합병 이후 당연히 오라클 소유가 되었다. 오라클은 썬의 대형 입간판을 떼어내고 오라클 간판을 달았는데, 간판의 뒷면에는 여전히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로고가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는 '우리는 경쟁자를 확실히 밟고 지배했다'는 오라클 특유의 정복욕을 상징하는 무시무시한 유물로 회자된다.2
  • 자바의 원래 이름 Oak: 제임스 고슬링이 개발 초기 자바를 구상할 때 사무실 창밖의 참나무를 보고 붙인 최초의 언어 이름은 'Oak'였다. 그러나 상표 등록 과정에서 이미 다른 가전용 언어 상표가 등록되어 있어 무산되었고, 개발자들이 자주 가던 동네 카페의 커피 원두 이름인 'Java'를 급하게 차용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 인텔과의 오랜 갈등: 썬은 자사의 하이엔드 SPARC 칩을 고집하며 인텔의 저렴한 x86 프로세서를 조롱하곤 했다. 그러나 인텔의 미친 성능 향상과 리눅스의 완벽한 이식성 결합은 썬의 비즈니스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 결국 썬은 말년에 허리를 굽혀 인텔 제온 프로세서를 탑재한 서버를 울며 겨자 먹기로 출시하는 굴욕을 겪었다.

5. 관련 문서

각주

  1. NFS 프로토콜의 개발 공헌은 현재 대규모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이나 웹 서버 인프라에 기초 중의 기초 뼈대로 깊이 작동하고 있다.

  2. 많은 썬의 개발자들은 오라클에 인수된 후 대거 이탈하였고, 그 결과 실리콘밸리의 기술 연합군이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 흩어져 빅테크 전성기를 가속했다.